융건능의 역사를 맨발되어 느끼다
지금은 맨발로 입장하는 것이 통제되었지만,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융건능 산책로는 맨발나그네가 걷기 참 좋은 길이었다. 흙길을 맨발로 디디며 정조의 효심을 느끼고, 사도세자의 한을 되새기며, 고요한 숲길에선 나무와 하늘, 바람과 역사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었다.
화성은 내 고향이다.
높아봤자 336m인 건달산, 구릉처럼 아담한 산들과 정겨운 서해바다, 가뭄과 홍수가 비껴간 풍요로운 들판이 펼쳐진 곳.
그리고 그 땅 한복판에, 조선왕조의 비극과 위엄, 효심과 권위가 서려 있는 융건능이 있다.

🌲 정조의 효심과 사도세자의 비극
융건릉(隆健陵)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를 합장한 융릉(隆陵), 그리고 그 아들 정조와 효의왕후를 합장한 건릉(健陵)을 함께 일컫는다.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조선의 왕과 왕비 40기의 능 중 가장 정갈하고 아련한 사연을 품은 곳이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한을 풀어주려 혼신을 다했다.
1789년, 아버지의 묘를 수원의 화산 자락으로 옮기고, 왕릉으로 격상시켜 소나무 45만 그루를 심었다. 그 소나무들은 오늘날 융릉의 울창한 숲을 이루었고, 나는 그 숲길을 맨발로 걸었다.

그 숲길 위에서 떠오르는 한 장면.
뒤주 속에서 8일간의 고통 끝에 생을 마친 사도세자.
그런 아버지를 위해 생전에 “아버지 묘소 곁에 나를 묻어달라”고 당부했던 정조의 절절한 효심.
“오늘 또 화성에 왔구나
더디고 더딘 길
아바마마 생각하는 마음
구름 속에 생기네”
– 정조의 시 중에서
🏞 능 너머 숲길, 역사와 연애하다
입구에서 오른쪽은 융릉, 왼쪽은 건릉으로 이어진다.
나는 융릉부터 걷는다. 묘역 앞의 곤신지(坤申池), 홍살문과 참도, 수복방, 정자각을 지나 능침에 이르면, 역사와의 대화가 시작된다.



가끔은 벤치에 앉거나 눕는다.
하늘을 바라보고, 산바람이 들려주는 옛 이야기들을 귀 기울인다.
양만리의 시 한 구절처럼, 자연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고, 땅이 이불처럼 나를 품어주는 순간이다.
그리고 건릉으로 향한다. 상수리나무 숲이 인도하는 길.
정조의 능, 아버지를 향한 마지막 시묘효행의 실현이다.

그는 매년 빠짐없이 아버지 능행차를 행했고, 지금도 수원에서는 이를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
“죽어도 아버지 곁에 있고 싶다”던 마음은 건릉이라는 마지막 효의 완성으로 남았다.
🍃 융건능에 들리게 되면 나는 느리게 걷게 된다
융건능을 거닐 때, 나는 느리게, 더디게, 굼벵이처럼 걸었다.
가끔은 나무를 껴안고, 가끔은 야생화를 쓰다듬으며 걷는다.
빠르게 살아야만 한다고 세뇌당한 마음을 내려놓고,
나를 되찾는 길을,
조선의 역사와 대화를 나누는 길을 걷는다.
수천 그루의 소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들려주는 조선의 이야기를 귀 기울이며,
나는 다시금 맨발나그네가 된다.

🌿 [에필로그]


융건을 거닐 때마다 걷다 말고 문득 들려온 속삭임.
“느리게 걷는 이에게만 보이는 것들이 있단다.”
그 말처럼 오늘 하루는 그 무엇보다 충만했다.
나는 융건능을 걸을 때마다 걸은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비극과 효, 숲과 역사, 그리고 내 삶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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