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의 주름, 진짜 아름다움의 선
내 어머니는 스물세 살에 시집와 아흔한 해를 살다 가셨습니다. 시골살림에 아들 일곱을 키우며 얼굴과 몸은 세월 속에 많이 망가졌지만, 그 모든 흔적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살아낸 인고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입니다. 그녀가 내게 주는 사랑은 하늘처럼 크고, 강물처럼 자상하며, 거대한 파도처럼 강했습니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힘이 되어준 어머니, 그 사랑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무한했습니다. 막막한 길 앞에서 내가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이름 역시 어머니였습니다.

▲ 스물세 살에 시집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 어머니(전통혼례)
새벽부터 도시락을 싸고, 논과 밭을 건사하고, 겨울에는 얼음장 같은 빨래터에서 손이 갈라져 거북등처럼 되도록 일을 하셨던 분. 아들 일곱을 낳아 기르면서도 동네 산파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아이들 도시락 반찬 하나까지도 남다르게 챙기셨던 분이었습니다. 그 억척스런 사랑 덕분에 우리는 배움의 길을 걸을 수 있었고 세상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그 모든 헌신의 대가로 어머니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새겨졌습니다. 그러나 그 주름은 늙음의 표식이 아니라, 사랑이 그려낸 지도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젊음의 미와 외모의 빛깔만을 좇지만, 진짜 아름다움은 그 빛이 잦아든 뒤에 더욱 선명해집니다. 오래 버티어낸 얼굴, 누군가를 위해 땀 흘린 얼굴, 그 얼굴이야말로 세월이 선물한 가장 깊은 미(美)입니다.
세상 모든 어머니, 할머니들의 얼굴
어머니의 이야기는 한 집안의 기록을 넘어,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들의 역사입니다. 시장에서 장바구니를 들고도 손주에게 환히 웃어주는 할머니, 새벽 어둠 속에서 도시락을 싸는 어머니, 굳은살 박힌 손으로 옷을 기워 입히던 어머니…. 그 얼굴마다 세월의 선이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 곱게 늙은 어머니의 상(像). 주름은 세월의 흉터가 아니라 사랑의 선이다
주름은 세월이 남긴 상처가 아니라 사랑이 지나간 길입니다. 땀방울이 모여 그려낸 강줄기요, 눈물이 모여 빚어낸 산과 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사람의 얼굴에서 한 시대의 인내와 연대를 읽게 됩니다. 젊음의 아름다움이 빛이라면, 어머니와 할머니의 아름다움은 그 빛을 오래 지켜준 별빛입니다.
화려하게 꾸민 얼굴은 사진 속에서만 오래 살지만, 사랑으로 새겨진 얼굴은 마음속에서 오래 빛납니다. 오랜 풍상을 견딘 뒤에 남는 것은 외모의 윤기가 아니라 표정의 온기입니다. 그 온기가 사람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공동체를 지탱합니다. 그래서 나는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어머니의 얼굴에서, 언제나 나의 어머니를 봅니다.

▲ 88세 생신날, 여전히 다정하신 두 분. 미소에 세월의 지혜가 머물렀다
진짜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가
어머니는 이제 제 곁에 계시지 않지만, 나는 매일같이 그분을 봅니다. 버스 정류장, 시장 골목, 공원 벤치에서 만나는 수많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얼굴에서요. 그 주름마다 자식과 가족을 살려 낸 시간의 무게가 담겨 있습니다. 진짜 아름다움은 젊음의 피부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 준 얼굴에 있습니다. 어머니의 주름, 할머니의 미소—그것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아름다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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