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쓴 에세이

지리산과 나 — 천왕봉을 맨발로 오르다

맨발로 걸어라 2025. 9. 7. 17:30

 

지리산은 내게 늘 어머니의 품이었다. 웅대한 산세와 깊은 골짜기, 끝없이 이어진 능선은 한 인간의 고단한 삶을 다 품어주는 듯했다. 오늘은 그 지리산 가운데서도 대한민국 최고봉 천왕봉을 맨발로 오른 기록을 중심으로, 지리산에 깃든 역사와 문학, 그리고 맨발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지리산은 어떤 산인가

지리산은 1967년 12월 29일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경남·전남·전북 3개 도, 1개 시와 4개 군, 15개 읍·면에 걸쳐 있는 면적 471.758㎢의 거대한 산악형 공원이다. 노고단에서 반야봉, 제석봉을 지나 천왕봉(1,915m)에 이르는 주능선은 남과 북, 동과 서로 뻗은 지능선과 골짜기를 품어 마치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제석봉 부근의 고사목지대

옛 선인들의 지리산 이야기

지리산은 예로부터 ‘신선이 사는 산’이라 불렸다. 신라의 최치원은 지리산을 신선의 세계로 기록했고, 고려의 이인로는 청학동을 찾아 헤매며 시편을 남겼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지리산을 유람하며 학문과 도를 구했고, 수많은 기행문과 시를 써 내려갔다. 지리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인간의 이상과 도피, 그리고 구도의 상징이었다.

근현대에 들어서도 지리산은 문학과 역사 속에서 강렬하게 등장한다. 박경리의 『토지』는 지리산 자락의 마을을 무대로 삼았고,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를 지리산에 새겼다. 이병주의 『지리산』이태의 『남부군』은 이 산을 피와 눈물, 그리고 희망의 현장으로 묘사했다. 이처럼 지리산은 시대마다 다른 표정을 지니고, 인간의 고통과 이상을 함께 품어왔다.

피로 물든 산, 그러나 품은 산

지리산은 숭고한 이상과 신선의 세계만 담고 있지 않았다. 6·25 전쟁 시기, 이 산은 또 다른 이름을 얻었다. 바로 빨치산의 근거지였다. 수천 명의 유격대가 이 산에 은거했고, 토벌대와의 전투가 이어지며 수많은 목숨이 스러졌다. 함양·산청·구례·하동 등 산간 마을 곳곳에서 벌어진 전투는 피비린내를 남겼고, 민간인 희생까지 이어졌다.

실제 함양군 마천면, 구례군 토지면 일대에는 지금도 빨치산 토벌 기념비위령비가 서 있다. 한쪽에는 전투에서 전사한 군경의 이름이, 다른 한쪽에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마을 사람들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산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가리지 않았다. 모두 그 품에 묻히고, 모두의 피를 흡수했다.

그럼에도 지리산은 묵묵히 버텼다. 신록은 다시 자랐고, 계곡물은 여전히 맑게 흘렀다. 피로 물든 기억마저 끌어안아 다시 생명을 틔워낸 산, 그것이 지리산이었다. 그래서 이 산은 우리 민족의 상처와 회복을 함께 상징한다.

천왕봉, 맨발로 오른 여정

2015년 5월, 나는 ‘늘푸른 맨발의 행진’ 벗들과 함께 백무동에서 천왕봉을 올랐다. 밤 10시 서울을 출발해 새벽 3시경 백무동에 도착, 간단히 라면으로 속을 달래고 곧장 산길에 올랐다. 새벽 공기는 차가웠고, 산길은 캄캄했다. 그러나 소지봉 근처에서 나는 과감히 신발을 벗었다. 차가운 흙, 날카로운 돌, 풀잎의 스침이 발바닥에 와 닿는 순간, 온몸이 깨어나는 듯했다.


어둠 속 발걸음 — 발이 먼저 길을 배운다

 

장터목을 지나 통천문에 이르자, 검푸른 하늘이 열리고 고사목들이 별빛처럼 능선을 수놓고 있었다. 바위의 차가움, 흙의 쿠션, 발의 균형을 지키려는 몸의 긴장감…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 있음의 감각이었다. 맨발은 한 걸음마다 나를 자연과 이어주었고, 숨소리는 깊어지며 마음의 소음은 잦아들었다.


통천문 — 하늘을 한 번 더 여는 문턱

 

그리고 마침내 천왕봉 표석 앞에 섰다. 시간은 오전 11시 무렵. 구름 사이로 햇살이 터져 나오며 능선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맨발로 그 자리에 섰다. 대한민국의 가장 높은 봉우리 위에서, 발바닥으로 땅을 느끼며 서 있는 그 순간의 전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아픔과 기쁨, 고독과 환희가 한꺼번에 밀려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것은 단순한 등정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자연과 합일하는 체험이었다.


천왕봉 — “여기, 지금, 살아 있다”

 

대한민국 최고봉을 맨발로 밟는다는 것

천왕봉에 맨발로 선다는 것은 단순한 모험이나 도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유와 해방의 선언이었다. 신발이라는 문명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땅과 직접 마주하는 일, 그 과정에서 얻는 통증과 기쁨은 모두 삶의 진실을 가르쳐 주었다. 대한민국의 최고봉을 맨발로 올랐다는 사실은 내게 큰 보람과 자부심이 되었고, 동시에 겸손을 배우게 했다. 내가 산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산이 나를 받아준 것이다.

맨발걷기의 즐거움은 여기에 있다. 발바닥으로 흙과 돌을 느끼며 걷는 동안, 세상과의 거리를 좁히고 자기 자신과 더 가까워진다. 걷는 행위가 곧 명상이 되고, 땀이 곧 해방이 된다. 천왕봉에서 내려올 때,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더 단단해지고, 더 부드러워지고, 더 자유로워졌다.

지리산에서의 맨발 산행은 단지 ‘맨발’이라는 형식의 특별함이 아니었다. 산의 상처를 기억하며 더 조심스럽게 딛는 태도였다. 돌부리 하나, 뿌리 하나에도 사연이 있다는 마음으로, 발바닥의 통증을 ‘경계의 언어’로 받아들였다. 내려서며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 길을 아낄 것, 떠들지 않을 것, 쓰레기를 남기지 않을 것. 그리고 때로는 멈춰 서서 산의 침묵을 함께 들을 것. 그렇게 산과 사람 사이에 작은 화해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산은 말하지 않지만, 늘 우리를 품는다.”
👉 《시니어 말벗 맨발나그네TV》 구독과 좋아요는 큰 힘이 됩니다 🌿
채널 바로가기

📚 더 읽을 거리 — 말벗나그네 티스토리

지리산 천왕봉 기록에 이어, 아래에서 에세이, 시니어라이프, 맨발걷기 정보·팁을 만나보세요.

#지리산 #천왕봉 #맨발산행 #맨발걷기 #한국국립공원 #백두대간 #시니어라이프 #에세이

※ 본 글의 사진과 텍스트는 ‘맨발나그네’의 현장 기록에 기반합니다. 무단 복제·배포를 삼가 주세요.